본안 판단까지 새 이사 임기 시작 못해
안형준 MBC 사장 해임 추진도 차질
과방위 ‘방송장악 청문회’ 정당성 얻어
KBS 신임 이사 추천에도 영향 불가피
김태규 부위원장 “방통위 현안 산적
심의·의결 없는 과제부터 신속 진행”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탄핵 소추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교체 작업에 제동이 걸리면서다.
방통위가 야권 우위 방문진 구도를 깨트리고 MBC 안형준 사장도 교체한다는 구상에 큰 차질이 생긴 셈이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때부터 공영방송, 그중에서도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구조 재편을 시도해왔다.
방통위는 야권 인사인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해임을 꾸준히 추진했으나 번번이 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결국 이사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야권 우위 구도가 유지됐다.
이동관·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체제에서도 야당이 탄핵소추안 카드로 압박하고 위원장 사퇴가 반복되면서 방문진 구조 재편에 실패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이진숙 위원장(가운데)과 김태규 부위원장(현 위원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31일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은 이날 ‘방통위 2인 체제’에서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6명을 선임하고 KBS 이사 후보 7명을 추천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그러던 중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새로 임명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현 위원장 직무대행)이 팔을 걷어붙였다.
임명 10시간 만에 방문진 새 이사로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등 6명을 전격 선임한 것이다.
야권과 방문진 현역 이사진 등의 반발과 ‘2인 체제’ 의결의 정당성 논란 등을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법원이 26일 방문진의 새 이사가 임명될 경우 권 이사장을 비롯한 현 이사진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는다고 판단하면서 일단 무위에 그치게 됐다.
이날 법원 결정에 따라 방문진은 방통위의 신임 이사 선임 전처럼 야권 우위 구도가 유지됐다.
MBC 경영진에도 별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특히 재판부가 “5인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회의를 전제한 방통위에서 단지 2인 위원으로 피신청인(방통위)에게 부여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그전에 2인 체제로 의결한 주요 안건도 시비가 일 것으로 보인다.
KBS 신임 이사 임명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방문진 신임 이사 임명과 함께 KBS 이사 11명 중 7명 후보를 추천했다.
KBS 이사의 임기는 31일까지로, 법원이 같은 체제 하에 임명했던 방문진 이사 임명에 대해 제동을 건 만큼 KBS 신임 이사 추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는 “이번 법원 결정에 따라 같은 2인 체제에서 의결된 KBS 이사 추천 또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KBS 이사들이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다만 방문진 임명은 방통위가 하지만 KBS는 방통위가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어서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문진은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현재 이사진 임기가 자동으로 연장된다.
방통위로선 가뜩이나 ‘식물 기관’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김 직무대행(부위원장)만 남은 1인 체제라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방통위의 현행 의결 정족수는 상임위원 2인이기 때문에 현재 심의·의결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방통위는 올 하반기에 EBS 이사 임명, MBC 등 일부 지상파 재허가 등 현안 처리가 예고돼 있다.
김 부위원장도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해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인사말을 통해 “현재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을 둘러싼 풀어야 할 여러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기관장 부재와 함께 위원회 개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방송통신시장 실태점검 및 사실조사 등 위원회 심의·의결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과제들을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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