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를 입은 15세 이하 아동·청소년 수가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피고인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하 성범죄 피해자 수는 2489명으로 2011년(1655명) 이래 가장 큰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15세 이하 피해자 수는 2013년(2147명)을 기점으로 줄곧 감소하다가 2021년(1793명) 이후로 증가세로 전환, 3년 연속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12세 이하 성범죄 피해자 수 또한 2011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12세 이하 피해자 수는 지난해 1325명을 기록하며 2011년 대비 36.8%가 증가했다.

이처럼 피해자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만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판결문 2913건을 분석한 결과 기소된 피의자의 54.8%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범죄 유형별로는 미성년자 성 매수 혐의와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경우 각각 74%, 61%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강력범죄에 속하는 강간과 강제추행도 피의자의 절반(49%·58%)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데 그쳤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이유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감형을 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재판부의 법 관념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 괴리감이 감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미성년자 의제강간 과정에서 폭행과 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의 경우 일반 강간죄와 달리 유형력(폭행·협박)을 행사하지 않아도 죄가 성립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폭행·협박 여부가 없다는 점이 양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2년 중학생을 숙박업소로 데려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건을 심리한 의정부지법은 피고인이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양형 사유로 참작했다.

민고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재판부가 미성년자 의제강간 사건 판결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행과 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며 "유형력 여부를 감형 사유로 적시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강하게 보호하겠다는 법적 취지를 고려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성범죄 양상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아동 성범죄에 대한 세분된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사무소 오페스의 송혜미 변호사는 "최근에는 성폭력 외에도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 등 다양한 종류의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동일한 선상에서 재판관의 재량에 따라 양형에 미묘하게 차이를 두기보다는 세분된 기준에 따라 양형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