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문제를 풀어봤다. 지문을 읽고 답을 찾아야 하는 18번부터 시작했다. 작년과 비슷한 난이도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 내려가다가 32번에서 멈췄다. ‘교육의 진정한 목표’에 대해서 묻는 이 문제는 해석보다는 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빈칸에 가장 적합한 문장을 찾아야 하는데 확실히 답이 아닌 두 개를 우선 빼고, 좀 덜 확실해 보이는 것도 제외하고 남은 두 문항을 놓고 결국 ‘찍었다’. 이 문제의 오답률이 84%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수능 영어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풀기 어렵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신으로 올해 K리그 FC 서울로 이적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시 린가드가 지난해 문제를 보고 “오, 마이… 학생들이 이걸? 말도 안 된다”며 놀라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능 영어는 결국 외국어로 문해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영어를 문제 풀이로 익힌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디지털 기기가 삶의 일부, 아니 거의 전부인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공감하고 있다.
교육부가 2025학년도부터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AI 디지털 교과서를 공개했다. 공교육에서 모든 학생이 AI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이 세계 최초다. 초등 3·4학년 수학·영어에 사용하고, 중1과 고1은 영어·수학·정보 과목의 AI 디지털교과서 76종 중 하나를 선택해 서책 교과서와 병행 사용한다. 일반 전자책과 다른 점은 체험 활동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학생끼리 상호작용도 가능해 챗GPT처럼 묻고 답한다. 학력 미달자의 기초학력 도달률이 세 배 이상 높아졌다는 보고서도 있다. 여기까지는 교육부의 말이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디지털교과서 본격 도입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무리한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문제 풀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답을 분석하고 특정 패턴을 예측해 오답률을 줄인다. 교육부는 2일 AI 교과서 최종 검정 통과본의 웹 전시본을 학교에 전달하고 시연회를 열었다. 이를 본 현장의 교사들 반응은 회의적이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쓴다는 점만 빼면 사교육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고, 수업 효용성도 당장 알 수 없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가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 교육 격차 해소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 사교육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공교육에 이식했으니,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학생은 중위권 이상의 학생들일 것이고 격차가 벌어진 학생은 교사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세로로 서 있는 데 왜 ‘가로등’이냐고 묻는 학생,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시장에 가면 반찬이 많다’고 이해하는 학생,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욕을 한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큰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예정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은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교과서는 의무적으로 채택해야 하지만 교육 자료가 되면 학교장이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
임훈구 편집부문 매니징에디터 keygri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