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검찰과 경찰이 각각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두 수사기관에 사건 이첩을 요청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 때 단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이어진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그리고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귀)'으로 불린 대통령령(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수사기관 간 수사권 배분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각 수사기관이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이번 수사를 놓고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9일 공수처는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사건을 공수처가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 공정성 논란이 있다"며 "검찰과 경찰은 공수처의 이첩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공수처는 전날 기자단 공지를 통해 "오동운 공수처장이 공수처법 제24조에 따라 검찰과 경찰을 상대로 이른바 '비상계엄 선포' 관련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부터 처장 직속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리 검토와 강제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한 결과 군 관계자 등에 대한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중복수사 우려를 해소하고 수사의 신속성,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 이첩요청권을 행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공수처법 제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1항은 공수처장이 공수처의 수사와 중복되는 범죄수사에 대해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을 요청했을 때 해당 수사기관은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경찰과 검찰이 실제 이첩 요청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경찰과 검찰은 법리 검토를 거친 뒤 의견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검사 15명과 수사관 36명 등 수사 인력 전원을 투입하고, 공수처법에 따라 검찰과 경찰에 수사 지원 및 협조 요청을 통해 신속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검사나 수사관의 잇단 사퇴로 늘 정원 부족에 시달렸던 공수처가 이번 사건을 수사하기에는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출범 4년이 다 돼가는 공수처는 아직까지 단 1명도 인신 구속에 성공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기소해 유죄를 선고받았던 손준성 검사마저 최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 경찰과 검찰은 각각 특별수사기구를 꾸려 이미 강제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까진 검찰이 수사를 주도하고 있다. 검사 20명, 수사관 30명으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 검찰은 지난 7일 군검찰로부터 군검사 등 12명을 파견받아 합동수사를 진행 중이다. 전날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자진 출석시켜 조사한 뒤 긴급체포함으로써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검찰은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직권남용죄의 관련사건으로 내란 혐의까지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수사 대상에 오른 경찰이 많은 상황에서 검찰과 경찰이 합동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수본은 이날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을 소환했고, 김 전 장관을 세 번째 소환해 조사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는 법무부를 통해 출국금지 조치했다.
반면 경찰은 수사권 조정 이후 내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은 경찰이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검찰의 합동수사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150여명 규모로 구성된 특별수사단은 전날 김 전 국방부 장관의 서울 자택, 공관,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휴대폰, PC, 노트북 등을 확보하고 김 전 장관에 대한 통신내역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통화 내역도 확보했다. 또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 김준영 경기남부청장 등 4명의 휴대전화도 임의제출받아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국방부 주요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에 대해 경찰, 검찰, 공수처가 각각 수사에 나서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법원은 지난 6일 공수처가 김 전 장관에 대해 청구한 영장을 '동일 또는 유사한 내용의 영장의 중복 청구' 등을 이유로 기각하며 "수사의 효율 등을 고려해 각 수사기관 간 협의를 거쳐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등 상당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수사 기관이 사건을 맡든 경찰은 '셀프 수사', 검찰은 '권한 없는 수사', 공수처는 인력 부족 문제로 '부실 수사'라는 문제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동 수사가 가능해지려면 먼저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수사 기관의 구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죄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가 임명될 경우 각 수사기관의 자료들을 넘겨받아 일괄 수사하게 된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