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츰 안정세를 찾던 환율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또다시 폭등하면서 시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외 환경 악화와 함께 국내 정치적인 상황까지 맞물린 결과라며 당분간 불안정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학생, 해외 장기 체류자, 해외 사업자 등은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학비와 생활비 등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으로 두 자녀를 유학 보낸 학부모 최인선씨(53)는 "첫째의 다음 학비 납부일은 12월 마지막 주, 둘째의 학비 납부일은 내년 1월 첫째 주인데 현재 환율대로라면 둘이 합쳐 1억500만원이 든다. 한 달 전과 비교해 딱 1200만원 증가한 셈"이라며 "절망스럽고 막막하다는 생각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까 싶어 학교 측에 학비 납부일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한 사립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씨(25)는 "이제 곧 봄학기 학비 납부일이 다가오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 학비를 대주시는 부모님께 말씀드릴 면목이 없다"며 "다음 학기엔 아르바이트라도 구해 부모님께 받는 용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환율에 민감한 수출입 사업자들도 빨간불이 켜졌다. 화장품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박한기씨(47)는 "연말·연초 특수를 앞두고 물건을 대량으로 수입하기로 계약돼 있었다. 이제 곧 거래처 쪽에 대금 결제를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환율이 너무 올라 2000만원 가까이 손실을 보는 것 같다"며 "나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처와 사업하는 주변 유통업 종사자들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인 9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오후 종가(1419.2원)보다 17.8원 치솟은 1437.0원에 마감됐다. 한때 고가는 1438.3원까지 치솟으며 1440원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시간 만에 한때 40원 넘게 치솟았으나 국회의 계엄 해제 소식이 들린 다음 날 4일엔 오후 종가가 다시 1410.1원대로 떨어지며 차츰 안정세를 찾는 듯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탄핵안 부결, 2차 계엄령 소문 등으로 지난 5일부터 급상승하다 9일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전문가들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당분간 이같은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대내외 무역환경 악화에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커지며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거시경제 지표가 크게 바뀌었다기보다 탄핵 정국이 반영되고 있는 결과로 봐야 한다"며 "지난주 탄핵안이 무난히 통과되고 정국이 안정화되겠다는 예측이 있었으나 부결되면서 불확실한 상황이 길어지게 된 점도 한몫했다. 탄핵 정국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당분간 이 흐름대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