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달 초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앞에 아파트 시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
“예전엔 결혼하면 전세로 시작했다.
요즘은 전세는커녕 월세도 빠듯하다”
30대 초반 청년들의 주거 형태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한때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였던 전세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월세와 자가 비중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가를 선택한 청년들은 대부분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은 이들이고,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비싼 월세에 쫓기며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주거를 둘러싼 청년 세대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이 발표한 ‘생애과정 이행에 대한 코호트별 비교 연구’에 따르면, 30대 초반(31~35세) 연령대에서 전세 거주 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반면 월세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고, 자가 거주 비율도 일부 상승했다.
코호트란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그룹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1985~1989년생의 30대 초반 시기, 월세 비율은 21.3%로 나타났다.
이는 1970~1974년생(17.3%)보다 4%포인트가량 높은 수치다.
전세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문제는 이 흐름이 ‘있는 집안’과 ‘없는 집안’의 격차를 벌리는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출산·내 집 마련을 동시에 해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 대출 규제가 강화된 데다, 금리 인상으로 월세 부담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장인 김모(34) 씨는 “맞벌이를 해도 서울 전세는 언감생심”이라며 “부모님 도움 없이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자금을 통해 20대 후반에 강남권 아파트를 매입한 또래도 있다.
청년 세대 안에서 ‘같은 세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거 양극화가 청년층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거 불안정은 결혼·출산을 늦추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며, 결국 사회 전반의 인구 문제와도 연결된다.
통계청 보고서도 “가족 형성이 가장 활발한 30대 초반 시기에 주거 형태의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청년은 전세에서 자가로 이동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청년은 월세로 밀려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자가 거주 비율의 증가는 일견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기와 정부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단순 해석은 금물이라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자산이 있는 이들에게는 전세 없이 곧장 자가로 가는 길이 열리고, 없는 이들에게는 전세조차 사치가 됐다.
‘운 좋은 세대’와 ‘운 나쁜 세대’ 사이에서, 30대 청년들은 점점 집이라는 꿈과 멀어지고 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