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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포커스①]경기 뛰다 직접 잔디 심는 선수들…지겨운 잔디 악몽은 계속된다

K리그 선수들이 열악한 잔디 탓에 그라운드에서 고통받고 있다.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김천상무전 후 그라운드의 모습. 사진=최서진 기자
잔디 악몽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국 축구의 민낯이 또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프로축구 K리그가 펼쳐지는 그라운드에서 움푹 파인 잔디를 선수들이 직접 정리하면서 뛰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엔 잔디 탓에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치러지는 경기장을 변경해야 했다.
열악한 잔디 상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심각한 국내 축구장 잔디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4일 “프로 무대의 열악한 잔디 환경과 관련,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잔디 품질이 과도하게 손상된 상태에서 경기를 진행하면 선수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클럽과 국가대표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경기 환경의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FC서울 린가드가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김천 상무전에서 손상된 잔디 탓에 넘어졌다.
정승원은 파인 잔디를 손으로 직접 보수하고 있다.
사진=중계화면 캡처
올 시즌 K리그는 가장 이른 개막을 맞았다.
추위가 몰고 온 잔디는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선수들은 미끄러질까 노심초사하며 그라운드를 누벼야 했고, 공이 불규칙하게 바운드돼 헛발질했다.

실제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김천상무전에서 린가드(서울)가 혼자 방향 전환을 하다 푹 팬 잔디에 걸려 넘어졌다.
기성용은 잔디가 파인 곳을 가리키며 불만을 드러냈고, 선수들은 직접 두 발로 잔디를 두드리며 파인 곳을 메웠다.

더는 참기 어렵다.
정승원(서울)은 양쪽 발목이 돌아갔다.
그는 “잔디가 안 좋아 ‘안전하게 하자’고 할 정도였다.
추우면 잔디도 딱딱해져 부상 위험도 크다.
잔디 때문에 선수들 모두 예민한 상태였다”며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잔디를 많이 신경 썼다.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조영욱(서울) 역시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아 뛰면서도 그냥 넘어진다”며 “훈련한 대로 할 수가 없다.
패스 한 번에 공이 튀기는지 봐야 하고 컨트롤도, 속도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김천 상무전에서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팬들도 화가 난다.
10년 차 축구 팬 정수정(38) 씨는 “경기 시작부터 잔디가 뒤집히고 땅이 파이고 공이 제멋대로 튀는 걸 보면서 이제는 안타깝기보다 서울시와 시설공단 측에 너무 화가 난다.
양팀 선수들이 잔디 때문에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며 “지난해부터 선수들을 포함 관계자, 팬들이 지속적으로 잔디 관리 문제를 제기했지만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잠실종합운동장 재개발로 앞으로도 대관 수요는 늘어날 텐데 시설공단은 잔디 관리에 대한 명확하고 가시적인 결과를 낼 대책이 있는지, 왜 ‘축구전용구장’의 잔디에는 투자하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국 축구의 심장이자 상징인 경기장이지만, A매치를 치르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A매치는 폭염과 외부 행사 등으로 잔디가 크게 훼손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치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오는 3월 A매치 역시 고양과 수원에서 열린다.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김천 상무전에서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다른 경기장 상황도 열악하긴 매한가지다.
전북 현대는 오는 6일 예정된 2024~202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2(ACL2) 시드니FC(호주)와 8강 1차전을 전주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치른다.
불량한 잔디 탓에 AFC 측이 경기를 치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국제적 망신이다.

안타깝고 창피한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일본 J리그는 추춘제 전환을 위해 100억엔(약 97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 역시 추춘제를 검토하고 있지만, 열악한 잔디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추춘제 추진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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