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21

가리봉총각
등록일 2016-01-22 14:31
조회수 7300

1999년 7월 어느 날.
길을 쫄래쫄래 걸어가던 작은 믹스견이 귀여워 어머님이 소세지를 하나 먹인 걸로
우리 집 공장에 걸터 앉아 붙박이가 되어버린 강아지.
남의 집에서 전세살이하는 우리집 여견으로 강지를 키울 여력이 안되어서
강아지를 쫒아보기도, 멀리 데려가서 놔두고 오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공장에
돌아오기 전 그 녀석이 먼저 돌아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부모님은 아무래도 우리와 인연이거 같다 싶어 키우게 된 강아지의 이름을
'이쁜이'라고 지었습니다.
유기견 암컷인 이쁜이는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앉아, 엎드려 등의 말도 한 번만 가르쳐주면 다 알아듣고
대소변도 항상 나가서 자기가 보고 싶으면 달려와 어머니에게 데려가 달라고 하는 정말로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우리 집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2년 후 갑자기 이쁜이가 길가던 강아지가 덮쳐 -_-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됩니다.
전 날 신나게 공원에서 놀다온 후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이쁜이 품안에 노란색의 뭔가가 꼬물거려 들쳐보니 새끼 강아지가 있더라구요.
놀랬습니다. -_-;;;
밤새 가족들 몰래 출산을 한거였습니다.
어머님은 고생했다고 자식들에게도 잘 안먹이는 삼계탕과 북어를 넣어 끓여주셨습니다.
새끼 강아지의 이름은 한 달 후 재롱을 많이 떤다고 해서 '재롱이' 라고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가족들은 일상에서 싸우기도 웃기도 놀기도 하면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17년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과 같다고나 할까요?
이쁜이가 다쳐서 병원에 들고 뛰고
새벽에 이쁜이가 자궁축농증으로 아파해서 새벽에 슬리퍼만 신고 의사선생님 불러내서 새벽 수술도하고.
재롱이가 칼날에 다리를 베어 피를 흘리는걸 어머님이 보시고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쓰시면서도
그 먼 동물병원을 달려가시기도 하고 재롱이가 장염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병원에서 밤을 새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위해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쁜이가 온지 14년째 되는 해 이쁜이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떠났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습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생의 끊을 놓아버린 이쁜이가 눈도 감지 못하고 누워있었습니다.
원래 강아지는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님이 이쁜이를 화장하기 전 솜으로 입, 귀, 코르 염까지 다 하시고 어머님이 아끼시던 삼베로 잘 감싸서
작은 상자에 넣어두셨더라구요.
비록 생의 끈은 끊어졌더라도 온기는 남아있었네요.
이쁜이를 화장하고 거의 1년간은 슬럼플에 빠졌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재롱이가 있었기에 빨리 극복할 수 있었네요.
그렇게 이쁜이는 슬픔을 넘어 우리 가족들 기억속에 그림움과 행복으로 남겨두고 재롱이와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재롱이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신체적으로 이상증상을 보여올 때쯤 병원에서 4개월 전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떨어졌었습니다.
손을 쓸 수도 없는 병이라서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고만 하더라구요.
안락사를 권했지만 도저히 저희 손으로 보낼수가 없어서 약으로 버티겠다고 하고 매주 수면제와 진통제를
지어와서 먹였습니다.
그래도 밥은 계속 잘 먹었기에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병이 진행된느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더 이상 기립이 안되고 하루에 20시간 이상을 수면제로만 버텼습니다.
뇌종양 판정이 나고 우리 가족들은 재롱이가 떠나는 것에 대해서 기정사실화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최대한 버티다 저번 주 토요일 밤부터 코에서 염증이 끊임없이 나와 월요일 오전 병원에 데려갔더니
뇌속의 염증이 터져 흘러나온다고 했었습니다.
당시 진통제 주사를 2번이나 놓았는데도 전혀 안들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네요.
결국 보내줄 떄가 왔구나 싶어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재롱이에게 수면제를 주사했습니다.
고통스럽게 소리지르던 아이가 금새 조용이 잠들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락사 주사를 놓고 그렇게 금새 떠나갔었습니다.
이쁜이를 화장했던 곳에 바로 전화를 해서 화장 준비를 해달라고하고 화장터로 갔습니다.
다시 인사 한 번 더하고 재롱이를 화장해줬네요.
재롱이의 유골함을 제 방 장식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던 이쁜이 유골함 엎에 놔두고 바라보았네요.
결국 어미와 새끼가 3년만에 만나게 되더라구요.

이렇게 우리 반려견들과의 17년의 여행은 이렇게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재롱이는 뇌종양 판정을 받은 이후 가족들이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갑작스럽게 떠난 이쁜이보다는 좀 더 빨리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고통스럽게 고생하던 재롱이를 좀 더 편히 보내줬다는게 좀 더
빨리 안정을 찾게 해주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데도 뭐랄까요?
집에 가서 부모님과 전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하고 밥도 먹고 일도 하는데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이쁜이와 재롱이의 잠자리 방석이 이제는 없으니
너무 큰 허전함이 밀려오더군요.
아주 아주 작은 한 구석의 자리이지만 우리 가족들에게는 가장 큰 위안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큰 자리가 과연 채워질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마 시간이 흘러 그 자리는 우리들이 함께했던 17년간의 추억이 채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젠 17년간의 생의 여행을 마치고 추억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거 같네요.
이제 곧 봄이 되면 저희 집 근처 풀밭에 철쭉꽃이 화사하게 필 겁니다.
철쭉꽃이 만발하는 그 따듯한 봄날이 오면
이쁜이와 재롱이의 유골을 햇볕이 잘드는 철쭉꽃 아래에 뿌려주려 합니다.
그럼 그 아이들도 이젠 좋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리라 소망해 보려구요.^^

17년간의 여행 우리 가족 모두 행복했다고 전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