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2

1983년 9월1일 러시아 전투기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시켰던 그 날 치매 중증이셨던 할머니가 7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큰아버지가 방문을 닫아두고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더운 날씨에 방문 닫아두었으니 기력이 못견뎌서 돌아가신거다. 좀 더 사실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큰아버지 원망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70대에 암 수술을 하셨고 수술 이후에는 술 담배 다 끊었지만  

암과 치매는 동시에 잘 안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아마 체질에 맞지 않는 과한 술이 치매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치매 증상이 악화되니 모르는 사람이 전화와서 '할아버지 길 잃으신 것 같은데 데려가세요'라는 얘기 들으면 일하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다행히 치매 치료를 시작하고는 증상이 호전된 것인지 길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몇 년을 더 사셨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꾸 등이 아프시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폐암 말기 치료불가 시한부 3개월이랍니다. 

드라마에서만 봤던 시한부 3개월. 

약을 먹어도 아프시답니다. 가능하면 집에서 모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약으로는 통증 제어가 안됩니다.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보름쯤 지나니 병원에서 더이상 간호가 안되니 24시간 간병인이 있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랍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친구 아버지는 발병후 한 달 반, 호스피스 병원에서 딱 1주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도 해 줄 수 있는 치료는 없습니다. 아프다고 하면 진통제 놓아줍니다.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또 진통제 맞습니다. 

그렇게 약에 절여져 신체활동은 급속히 저하되고 하루종일 잠만 주무십니다. 

엄마는 '진통제라도 맞고 안아프게 있다 가면 다행이다. 나는 절대 연명치료하지마라'고 하십니다.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집에 모셔가고 싶었지만 아프다고 하시면 결국 또 병원에 와야합니다. 기력이 없는 중환자 분을 모시고 집-병원을 왔다갔다 반복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호스피스 병원은 입원도 쉽지 않습니다.

병실에는 60대 건강해보이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밥도 잘 드시고 말도 잘 하시고 금방 죽을 것 같지 않습니다. 무슨암이라고 하는데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한 달을 넘기지 못합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내가 백 살은 살아야 안되겠나. 여기는 안되겠다. 다른 병원 좀 알아봐라'고 하십니다. 예전에 폐암 말기라고 말씀드렸었지만 이제 기억을 못하십니다. 

친척과 지인들에게 아버지께서 입원 하셨다고 연락을 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와도 아버지는 잠만 주무십니다. 깨어있어도 말을 잘 못하십니다. 밥보다 하루 세 끼 먹는 약이 더 많아 보입니다. 

엄마가 전화와서 며칠이나 더 사실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의사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임종하기 몇 시간 전에는 의사들이 감지가 되기 때문에 미리 연락이 갈거다'라고 얘기해줍니다. 

다음날 새벽 동 틀 무렵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그렇게 임종도 못지키고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래도 시한부 판정받고 5개월을 사셨습니다.

미리 알아봐둔 장례식장에 연락하고 상조회사와 계약하고 지인과 친척들에게 문자와 카톡을 보냅니다. 

처음 상을 치러보는 상주들은 손님맞이하기에 경황이 없고 상조회사 직원이 지도하는대로 절차와 장례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암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라 너무 많은 약 때문에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의사의 과한 약 처방때문에 좀 일찍 돌아가셨다고해도 의사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생업을 반쯤 포기하고 부모님 병간호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저도 생업을 포기하고 24시간 병간호를 했다면 아버지께서 한 달쯤 더 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더라면 불효에 대한 죄책감이 좀 덜할까요? 

한 달 쯤 더 사셨다면 아버지께서는 좀 더 행복하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