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상 기온을 일으키던 5월 초 어느 날, 대한민국에 사는 A씨는 지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불효스키의 명성만을 남긴 모토로라 슬라이드폰을 뒤로 하고, 나의 호기심도 충족시켜줄 겸 새로운 핸드폰을 알아보기로 한다.
모델명이 LG-SUNYOOGGOOL 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효도르폰의 최강자로 인정받고 있는 와인폰2를 선택하려 했으나 그런 안전한 선택으론 나의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는다.
해서 게시판에 질문글을 올리니 마지막에 어느 회원분이 캔유 F1100 모델, 일명 '블링블링' 을 추천해 주신다.
'흠, 얼굴에 화장 떡칠한 두 남녀가 선전하던 그것 말인가?' 내가 쓰려고 했다면, 최소한 가개통으로 남겨두려 했다고 해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같은 풀터치 전성시대에 전화랑 문자만 되다시피 하는 이런 전화기를 살 순 없지.
하지만 이건 효도르를 위한 선택...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은 화려한 색상, 큰 액정, 그리고 큰 키패드. 이것이면 족하리라. 경합을 벌였던 와인폰2는 색이 너무 단순했다. 그래, 블링블링으로 하자.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고 하루에 최소 몇 개씩 진열되던 뽐뿌글을 통해 구매를 하려고 했으나 하나같이 핑크색은 고갈되어 있었다. 처음엔 굳이 핑크색에 집착할 생각은 없었지만 가지기 어려운 것에 더욱 집착하는 게 인간의 속성 아니던가. 그렇게 하루의 잠복을 실패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드디어 어느 온라인 판매상을 통해 구매버튼을 누르고 바쁘게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게 된다.
조건은: 24개월 11만원, 가면, 요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조건. 2년 동안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상쇄 가능하다.
당일 해피콜이 오고 다음날 택배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경비실에 연락을 해 봤으나 오지 않았단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을 넉넉히 넘기고 핸드폰이 도착했다.
선개통 후발송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 먼저 끊는다더니 밀봉으로 왔다. 전화 끊기면 큰일 나는 비즈니스맨에게는 치명적인 말장난. 하지만 효도르폰의 임무 중 70%는 배고프면 밥 먹는 것이다.
겉옷과 속옷.
고급폰들을 따라해 봤으나 플라스틱 쪼가리에 몸을 누인 너는 그 출신부터 다르다는 걸 명심해라.
내용물을 보자니 이 오곡이 무르익는 날씨에 앙상한 가로수만 떠오른다.
대형 액정의 시대라 확! 와닿진 않지만 구형 핸드폰들과 비교하면 2.7인치의 액정은 분명히 크다. 글라이드센서가 뭘까?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넘어가자. (후에 정체를 알려 드리겠다)
역시 키패드도 큼직큼직하다. 특이한 건 제조사는 팬택 앤 큐리텔이지만 문자입력 방식은 싸이언이다. 스카이 문자 입력 방식에 적응 못 한 나에겐 좋은 일. 하지만 그 장점은 새 핸드폰으로 전화번호 옮기고 나면 없어진다.
효도르를 하려면 폰트부터 크게 해야지. 폰트 종류가 꽤 다양하다.
이런 형태의 메뉴 전환은 느린 편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 빠른 메뉴전환은 멀미만 일으킬 뿐이다. 상관 없다.
상황에 따라 '외부 테두리' 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LED가 움직이게 설정할 수 있다.
이건 좀 참신하다. 가수들이 피쳐링한 곡을 벨소리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효도르와는 무관. 전화는 무조건 '따르르릉' 하고 울면 된다. 그리고 키패드 누를 때 숫자 불러주는 음성안내가 없다. 어르신들은 자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아쉽다.
영어, 일어, 중국어 사전을 쓸 수 있는데 그 중 미리 지정된 몇 가지의 회화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 사전에 있는 모든 단어를 들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전화기 단가만 높일 뿐.
메뉴얼을 열어보게 한 원인. 단어를 찾을 때 직접 써서 인식시킬 수 있다는데 액정을 아무리 문질러도 반응이 없다. 그래서 메뉴얼을 찾아봤더니 숫자판을 문지르란다. 전술한 '글라이드센서' 란 그런 것이었다. 센서가 그렇게 후지진 않지만 내 안 센시티브한 손으로 터치팬도 없이 숫자판을 문질러서 글자를 인식시키기가 녹록치는 않다.
20핀용 젠더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불만이 표출된다. 요새 나오는 핸드폰은 20핀이 기본이다. 해서 요즘 나오는 젠더가 필요한 핸드폰엔 젠더가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다. 블링블링에도 나름 귀여움을 떠는 젠더가 들어있다. 어르신들에겐 뒷판 열고 배터리 갈아끼우고 하는 것조차 일이다. 때문에 아예 젠더를 장착한 상태로 사용하시게 하려고 했더니 젠더와 뚜껑이 연결장치로 결합된 상태이기 때문에 핸드폰 본체와 젠더가 결합된 상태에서 폴더를 열고 닫으려면 젠더가 걸리적거리게 된다. 젠더를 스트랩에 묶어서 달고 다니자니 나같이 기기에 상처나면 그 스트레스가 며칠을 가는 사람은 못할 짓이고, 항상 장착하고 다니자니 충전할 때 걸리적거리고. 애매하다.
그래서 같은 메이커의 러브캔버스에 들어있는 젠더를 장착했더니 딱 좋다. 아! 그렇다면 젠더를 서로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코페르니쿠스 싸다구를 갈길 발상으로 장착했더니... 아예 슬라이드가 올라가질 않는다... - ┌;
외부 액정은 가운데 부분에 아주 작게 위치한다. 게다가 파스텔톤으로 부옇게 되어있는 디자인 덕에 그 작은 부분마저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다. 그냥 외부 액정은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핸드폰을 잠깐이나마 만진 감상은 이 정도다. 귀차니즘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을 위해 요점 정리만 한다면
장점:
1. 큰 액정, 큰 키패드
2. 국내 출시된 핸드폰으로선 드물게 파스텔톤 컬러
3. 지금 광고에서 나오고 있는 핸드폰을 실질적으로 무료로 실사용할 수 있는 기회
4. 핸드폰 기능으로선 드물게 일본어, 중국어 사전까지 장착. 글라이드센서를 통한 필기인식은 꽤나 참신
단점:
1. 부실한 내용물
2. 외부 액정은 없는 셈 쳐라
3. 키패드 음성 안내가 없다
4. 귀엽기만 한 젠더
5. 효도르용으로 샀지만 받으시는 당신께선 그다지 기쁨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위주로 썼다. 장점만 보고 뒷통수 맞는 것보다 단점을 미리 알고 구입해서 몰랐던 장점을 발견하시라는 뜻이니 만족하면서 쓰시는 분들은 너무 노여워 마시길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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