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북(Netbook)의 인기가 대단하다. 넷북의 인기는 이제 ‘심상치 않다’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 현재 넷북은 이미 엔트리급 노트북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이며, 기존에 ‘비주류’라는 이미지를 가진 소형 서브노트북 시장을 당당히 주류로 끌어 올렸다. 또한 노트북 시장을 아예 ‘넷북이냐 넷북이 아니냐’로 양분할 정도의 힘을 보여주었다.

넷북이 이런 인기를 얻은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10형 정도의 디스플레이를 가진 디자인 가이드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휴대성, 간단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성능, 그리고 무엇보다 구입에 큰 부담이 없을 정도의 가격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넷북은 처음 목표했던 개발 도상국 시장보다, 오히려 생활 수준이 높은 시장에서 ‘서브 시스템’ 정도로 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넷북은 분명한 한계도 같이 보여 주었다. 일단 작은 디스플레이로 인한 낮은 해상도, 인터넷 이외에 멀티미디어를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성능은 애초에 넷북이 목표하던 ‘개발 도상국을 위한 저가형 시스템’이라는 조건에는 충실하지만 그 이상을 원하는 사용자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었다.

일단, 넷북의 성공으로 ‘서브 노트북’ 시장의 가능성과 사용자 수요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텔은 지난 컴퓨텍스에서 이런 시장의 수요에 맞춰 ‘울트라 씬(Ultra Thin)’ 노트북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프로세서와 보급형 칩셋을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이 ‘울트라 씬’ 디자인을 아예 하나의 ‘폼팩터’ 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 ‘울트라 씬’ 노트북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울트라 씬’은 새로 생긴 개념이 아니며, 이전부터 이 영역을 위한 제품이 있었다. 울트라 씬 노트북에 사용되는 ULV(Ultra Low Voltage) 계열 프로세서들은 기존 표준 모바일 프로세서에 비해 절반 이하의 낮은 전력 소비를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ULV 프로세서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라인업 자체도 넓지 않은 데다가 가격이 발목을 잡은 게 컸다.

실제로, ULV 프로세서를 사용한 제품들은 표준형 모바일 프로세서를 사용한 시스템에 비해 배터리 사용 시간에서 큰 장점이 있지만, 가격적인 부담과 함께 표준형에 비해 떨어지는 성능이 발목을 잡았다. 소비 전력과 발열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동작 속도를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지 못한 덕분이다.

그리고 ULV 프로세서를 사용한 제품의 가격이 비쌌던 데는 ‘수요가 적었다’ 는 것도 한 몫 했다. 물론 수요가 적은 데는 다 원인이 있고, 그 원인으로는 가격과 성능 문제를 빼 놓을 수 없다. 생산하는 쪽에서는 수요를 장담할 수 없고, 소비자 쪽에서는 선뜻 접근하지 못하는 기이한 입장에 놓인 시장이 바로 ‘울트라 씬’ 이 위치하는 제품군이었다

하지만, 이 ‘수요’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도출되었다. 넷북의 성공이 그것이다. 넷북이 가진 특징과 소비자의 불만을 살펴 보면, 왜 기존의 ULV 프로세서를 사용한 서브급 노트북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울트라 씬’ 제품군을 인텔이 따로 설정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애초에 인텔은 넷북의 주 고객을 ‘컴퓨터를 접하기 힘든 개발 도상국’ 으로 설정하고 가장 기본적인 활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성능을 최대한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덕분에 단가가 올라갈 수 있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옵션이 디자인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배제되었다. 애초에 인텔은 넷북 시장이 기존의 노트북 시장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막상 넷북은 개발도상국 시장보다, 이미 생활 수준이 충분히 높은 선진국 시장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성능은 둘째 치고, 가이드라인에 맞춰진 ‘작은 크기’와, ‘낮은 가격’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많은 넷북 사용자들이 넷북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 개념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엄밀히 말하면 선진국에서 이 시장은 원래 ULV 프로세서가 탑재된 서브 노트북들이 가져가야 할 시장이다. 하지만 현재 넷북은 높은 이동성과 낮은 가격으로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아쉬운 점인 낮은 성능이나 저해상도 디스플레이는 넷북 폼팩터를 변형한 모델들이 일단 아쉬움을 채우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 프로세서 성능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 넷북의 한계는 그 ‘크기’에서 오는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의 선택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기준은 ‘성능’이다. 하지만 막상 들고 다녀야 하는 모바일 영역에서는 성능보다 ‘휴대성’이 중요시된다.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더 오래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는가가 관점이 되며, 이런 점이 기술력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저렴한 가격이라는 조건까지 덧붙여지면 금상첨화고, 이런 점을 잘 보여준 것이 넷북의 인기다.

하지만 무턱대고 ‘더 작게’를 외칠 수는 없다. 2000년 초반, 끝없이 작아지던 휴대폰들은 결국 어느 정도의 크기에서 타협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것은 결코 기술 때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작아져야 할 것이 있는 반면, 오히려 커져야 할 것이 있다. 전체적인 크기를 줄이면서도 사용자의 신체와 마주하는 입력 장치나 화면 크기들은 최대한 키워야 한다는 문제가 결국 ‘타협점’을 만들어 냈다.

넷북의 ‘크기’는 이런 면에서 상당 수의 사용자들에게 아쉬움을 던졌다.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한 넷북 설계 가이드라인에서 화면 크기와 해상도에 제약이 걸려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화면 크기의 제약은 제품의 크기를 제한하는 효과도 있으며, 덕분에 넷북은 화면 크기와 해상도 뿐 아니라, 키보드 등의 입력 장치 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휴대성과 사용성에서 가장 절충점에 있는 12~13형 정도의 영역은 엄밀히 말해 아톰프로세서의 영역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고해상도 환경에서 만족스러운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메인스트림 급의 프로세서가 필요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메모리가 필요하다. 휴대성을 위해서는 전력 소비와 발열이 적은 프로세서가 유리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 ‘울트라 씬’의 핵심은 인텔의 ULV 프로세서

‘울트라 씬’ 은 기존의 ULV 프로세서를 사용한 제품군의 재정의이며, 대대적인 보강이라고 볼 수 있다. 더 가볍고, 더 오래 가는 노트북을 위해 기존 메인스트림급 제품에 비해 TDP가 절반 수준인 ULV 프로세서를 사용할 경우 일반적인 12~13형 노트북의 사용 시간과 전력 효율을 동급 배터리를 사용하는 아톰 기반의 넷북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성능은 아톰과 비교하는 것이 실례일 것이다.

‘울트라 씬’ 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저전력 프로세서로 인한 냉각 솔루션의 간소화다. 설계에 따라서는 완전한 팬리스(Fan-less) 설계를 통해 소음과 전력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디자인 또한 더욱 얇게 만들 수 있다. 인텔은 초박형 설계를 사용한 노트북에서도 충분한 냉각 성능을 얻을 수 있도록 제트 엔진의 냉각 개념을 변형한 래미나 월 제트(Laminar Wall jet) 기술을 소개한 바 있으며, 이를 사용할 경우 쿨링 유닛을 간소화하면서도 충분한 냉각 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ULV 프로세서를 사용한 라인업의 이름만을 바꾼 것이 ‘울트라 씬’이라 한다면, 굳이 이 개념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인텔은 이 ‘울트라 씬’ 폼팩터를 선보이면서 엔트리급의 셀러론 프로세서부터 최상급의 코어 2 듀오 계열까지 모든 라인업, 모든 영역 및 가격대를 위한 솔루션을 출시했다. 바야흐로 이제 ‘울트라 씬’은 하나의 ‘폼팩터’가 된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 울트라 씬 제품군이 출시된다는 것은 엔트리 레벨에서도 울트라 씬 기반의 노트북을 만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울트라 씬 제품군의 엔트리 레벨 제품은 현재의 넷북과 비슷한 수준의 가격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능은 넷북에 비해 우수하며, 넷북이 가지고 있던 각종 제약도 완화되므로 현실적으로 사용에 더 편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가격이 겹친다고 해서 소비 시장이 겹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울트라 씬 제품군이 나온다고 해도 넷북은 여전히 건재하며, 서로 노리는 시장이 다르다. 울트라 씬 제품군은 성능과 이동성을 동시에 원하는 사용자에게 더 적합하며, 주로 12~13형의 디스플레이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넷북이 주로 10형 이하의 화면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화면 크기에서부터 시장 차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정말 간단한 인터넷 기반 작업으로 충분하고, 오직 휴대성에만 관심이 있어 작고 가벼운 노트북이 필요하다면 이 때는 넷북 이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능과 휴대성을 타협할 수 있다면 울트라 씬 노트북을, 이동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성능이 필요하다면 표준형의 노트북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울트라 씬’은 ‘또 다른 선택’을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