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단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위한 스토리텔링

최신 컴퓨터 그래픽스와 인터랙티브 기술을 소개하는 ‘시그래프 아시아 2010(SIGGRAPH ASIA 2010)’ 이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다. 시그래프 아시아 2010은 미국 컴퓨터 협회(ACM)의 주최로 1974년부터 시작된 미국 ‘시그래프’ 행사의 아시아권 행사로, 2008년 처음 시작해 올해 3회를 맞아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번 시그래프 아시아 2010의 트랙 프로그램에서는,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명확히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기법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Issac Kerlow에 의해 진행된 ‘단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위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에서는 문화와 세대를 넘어서는 단순하고 강력한 모델로써 고전적인 스토리 설계와 구조 등이 논의되었다.

▲ 모범적인 고전 스토리텔링의 표본인 ‘디즈니 작품들’

그는 먼저, 스토리텔링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왜 영상물을 보는가’ 라는 의문을 제시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소개된 ‘영상물을 보는 이유’ 로는 타인의 경험이나 새로운 시각 등을 경험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적인 부분이 있다고 소개했다. 영상물의 스토리텔링은 이런 이유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를 해 내지 못한다면 ‘지루한’ 스토리가 되고 만다.

최근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방법과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키프레임 방식의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2D와 3D, 이들을 혼합한 방식 등 다양한 형태의 표현 스타일이 있다. 이런 다양함을 잘 보여주는 예로, 디즈니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이 가이드라인의 종류만도 12개가 있다는 것이 있다.

고전적 스토리텔링은 문화와 세대를 넘어서는, 오랜 시간 검증되어 온 단순하고 강력한 모델이다. 하지만 기존의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정석을 지킨다고 해서 언제나 성공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이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좋은 ‘이야기’ 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는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이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 지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제작 단계에 들어가면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표현에 대한 ‘지역적 특색’ 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아시아 지역은 감정을 격렬히 표현하지 않는 등의 특징이 있다.

관객 설정도 중요하다. 관객 설정에서 가장 확실한 기준은 ‘자신과 주위 친구들’ 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이는 관객과 친구들의 성향은 불특정 다수의 성향을 잡는 것보다 더 세밀한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친구들을 상정하고 이들의 이미지를 잡아 작품을 만들면 이들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물론 이를 좀 더 넓게 접근하면 친구의 범위를 넓게 잡아 색다른 결과를 볼 수도 있다.

또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생각해야 할 점으로는, 관객이 작품을 감상한 뒤 극장을 나갈 때 가지게 되는 ‘감정’ 에 대한 것이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은 관객의 감정을 유도해 마지막에 극장을 나갈 때 작가가 의도했던 감정을 관객이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법칙’ 이나 ‘균형’ 이 필요하며, 가장 정형화된 방식이 고전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잘 일깨워준 국내 사례 ‘원더풀 데이즈’

흔히 말하는 ‘장르’ 는 스토리의 ‘타입’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장르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방법은 달라지는데, 이는 장르에 따라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스토리텔링에 있어 먼저 고민해야 할 점은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에 대한 ‘장르’ 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요소요소에서 여러 가지의 장르적인 요소를 사용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이어져야 하며, 이에 따라 요소마다 사용되는 각종 요소들의 반영 방법도 달라지게 된다.

또한 스토리의 표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감성을 ‘보여주는 것’ 이다. 그리고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을, 이해를 시키려 노력하기보다는 믿도록 하는 것이 옳은 접근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스토리텔링은 ‘감성에 호소하는’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이성에 호소한다면 이야기는 지루해지게 된다.

이런 면에서 ‘시’ 와 ‘스토리’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1인칭 시점에서 감정을 잡아내는 작업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시와 스토리는 이 감정을 잡아낸 뒤 표현하는 방법에서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스토리는 나레이션이나 캐릭터, 대화 등을 사용해 어느 특정 순간을 ‘재구성’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효과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려면, 관객이 이 스토리를 왜 듣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전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문에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작품의 스토리텔링은 관객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이런 질문을 6살 어린이에게 물었을 때도 바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메시지 전달은 강하고 명료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스토리’ 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애니메이션을 이루는 ‘이미지’ 와 ‘사운드’를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도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품질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용하면 감정이 고조될 것으로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이에 대해서 안타까운 작품의 예로는 ‘원더풀 데이즈’가 꼽혔는데, 높은 이미지 퀄리티에 비해 스토리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어새신 크리드 브라더후드' E3 트레일러(출처 : 유튜브)

흔히 말하는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에는 효과적인 스토리 전개를 위한 일정한 구조가 있다. 서양식의 전통으로는 흔히 말하는 도입, 전개, 위기, 절정, 결말 형태의 5단 구성이, 동양식의 전통은 기, 승, 전, 결의 4단 구성이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동서양에서 사용하는 이들 구성은 사실 비교해 보면 대단히 유사하며, 서양에서 전개, 위기, 절정의 구분이 동양에서는 승, 전으로 단순화되긴 하지만 실상은 거의 같다.

고전적 스토리텔링 구조에서 ‘도입’ 부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특별한 계기가 제시되는 시점이다. 이는 보통 초반의 특별한 ‘사건’ 이 일어나는 형태로 표현되며, 이 사건의 전후로 주인공의 일상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점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사건은 ‘주인공’에 한정되어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후 ‘전개’ 부에서는 도입부의 사건 이후 추가적인 변화가 오고, 캐릭터의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위기’ 부에서는 전체 이야기의 절반 정도가 진행되는 ‘터닝 포인트’가 되며, 기존의 밸런스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이는 ‘절정’으로 이어져서, 이야기의 약 70~80% 정도가 진행된 이 시점에서는 긴장감과 압박감이 최대가 되며, 많은 관객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은 이 부분에 대한 인상이 된다. 이후 결말은 새로운 균형 상태가 구축된다.

이런 고전적 스토리텔링을 사용한 좋은 예는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도 많은 작품들이 고전적 스토리텔링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세션에서 선보인 좋은 영상의 예로는 게임 ‘어새신 크리드(Assassin’s Creed) 2의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짧은 길이 안에서도 대단히 클래식한 구조를 가진 스토리텔링의 좋은 예다.

이 ‘어새신 크리드 2’의 티저는 하나의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 주위를 바꾼다는 도입부의 공식에 대한 좋은 예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도주와 추격은 위기 부분을, 두 캐릭터의 대면과 대결은 이 짧은 작품에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만들며 절정 부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전개의 흐름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데, 이런 부드러운 흐름 또한 일종의 ‘기술’ 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누면 ‘씬(Scene)’ 이 된다. ‘씬’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칭하는 것이며 캐릭터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진행된다. 또한 이를 구성하는 ‘스크립트’ 는 다양한 액션, 대화, 사운드, 카메라, 장소, 빛 등의 요소가 들어가며, 좋은 스토리와 스크립트는 이런 모든 부분들이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스토리의 ‘디자인’ 이다. 고전 형태의 디자인은 비교적 만들기 쉽고 이해하기 쉬우며, 참고할 만한 다양한 작품이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고전 형태의 스토리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로는 활동적인 단일 주인공, 내, 외부적 갈등, 완결 형태의 엔딩, 명확한 인과 관계가 있다.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에서 주인공은 작품에서 선명한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유일한 존재이고, 전체적인 세계관의 중심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선악의 구분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선’ 의 위치에 있다. 갈등 부분에서는 스토리의 장르에 따라, 혹은 사건에 따라 내면적, 외면적인 갈등이 주어지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중 한쪽의 갈등만으로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고전적인 스토리텔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는 인과 관계가 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며, 우연적인 요소는 없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이야기가 산만해지는 것을 막는다. 또한 ‘완결 형태의 엔딩’ 또한 중요한 요소인데, 이 또한 인과 관계를 통해 완전한 결과를 보여 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관객들에 명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점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 ‘대체 무슨 일이야?’ 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에서 그래픽과 사운드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래픽과 사운드는 스토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쪽으로 치중될 경우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지만, 균형을 잘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고품질 그래픽과 사운드의 사용은 스토리텔링의 설득력을 강화해 주는 아주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한편, 스토리텔링에 있어 이야기가 지루해지지 않으려면 관객을 놀라게 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으며, 스토리의 일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스토리에 긴장감을 주는 몇 가지 연출 효과로는 잠시 화면이나 캐릭터를 슬로 모션처럼 지나가게 하거나 멈추는 등의 ‘일시 정지’ 연출을 통해 관객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법이 소개되었다.

또한 ‘패러렐 액션(Parallel Action)’ 의 사용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연출은 두 개의 사건이 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펼쳐지게 하는 방법이다. 이런 전개는 제한된 시간에 다양한 사건들이 동시에 전개되는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를 잘 사용할 경우 인과 관계와 긴장감을 모두 담아낼 수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