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담] 아무나 할 일 아닌 ‘Do It Yourself’1

컴퓨터 그래픽스와 인터랙티브 기술을 선보이는 ‘시그래프 아시아 2010’ 행사는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범주에서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을 다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2D, 3D 그래픽에서부터 애니메이션과 이를 위한 각종 기술은 물론, 콘텐츠 제작 수준에서의 본질적인 고민과, 창작을 위한 ‘도구’에까지 다양한 부분이 선보였다.

‘도구’의 측면을 좀 더 살펴보면, 컴퓨터 그래픽에 있어 도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만들기 위한’ 도구와 ‘보기 위한’ 도구가 그것인데, 이들은 분명히 교집합을 이루는 영역이 있지만 서로 겹친다고도, 종속된다고도 섣불리 단언할 수 없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 사실 말이야 이렇게 어렵지만, 간단히 말하면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관계가 있을 수도, 별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좀 더 흥미를 동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만드는 사람보다 소비하는 사람이 더 많은 만큼 ‘보기 위한’ 도구에 대한 주제가 있었다. 물론 시그래프 행사는 ‘만드는 사람’ 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는 행사긴 하지만, 만드는 사람들도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순환이 이루어져야 바야흐로 ‘산업’ 이 되는 것이다.

▲ 국내에서는 '아바타' 이후, 3D 디스플레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커졌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보기 위한’ 도구를 꼽는다면 3D 디스플레이가 있을 것이다. 평면으로 이루어진 디스플레이에서 현실 같은 그래픽을 보기 위해 처음에는 같은 평면적인 표현 방법을 가진 그림의 표현법을 빌려 왔던 컴퓨터 그래픽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빌려 3D 공간을 2D의 디스플레이에 표현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이 2D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넘기 위해 ‘눈을 속이기 위한’ 각종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뇌를 속이기 위한 방법은 간단한 개념에서 출발한다. 특정한 정보를 양쪽 눈에 따로 전달해, 이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물론 이를 위해 2D 디스플레이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 바꾸고, 어떤 식으로 정확히 양 눈에 정확히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느냐는 지금까지의 과제였으며,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현재까지 이런 정보를 선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검증된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보조 도구인 ‘안경’을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 안경을 사용할 경우엔 화면의 색상이나 프레임을 통해 정보를 선별하고, 안경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화면의 픽셀을 기준으로 정보를 선별해 출력하게 된다.

현재까지는 일단 품질 면에서는 보조 도구인 ‘안경’을 사용하는 쪽이 우수하다. 안경을 사용하지 않고 디스플레이에 빛의 조절을 위한 각종 필터를 장착하는 경우, 하나의 화면에서 양 쪽 눈에 가는 데이터를 모두 출력해야 되기 때문에 해상도가 절반이나 그 이하로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경의 경우, 특히 셔터글래스의 경우 이런 해상도의 저하가 없다.

▲ 3D 디스플레이가 가능한 각종 디바이스가 이미 공급되고 있다.

최근 이런 3D 디스플레이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전 업체들은 이미 3D TV를 출시하고 있으며, PC에서도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셔터 글래스 방식의 안경이 판매되고 있다. 물론 PC에서는 안경과 함께 출력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모니터를 갖추는 것이 권장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무엇인가를 즐기기 위한 시도에 발목을 잡는 것은 ‘비용’이다. 3D 디스플레이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즐길 만한 콘텐츠도 없다고 자신을 위로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론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에 구입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본전 생각’은 분명 지혜로운 구매와 소비에 도움을 주며, 이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미덕이다.

이런 비용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누리고 싶어하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직접 만들기’, 즉 ‘DIY’가 있다.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을 직접 구현할 능력이 되고, 시간이 있고, 어려움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면 이 DIY는 비용을 줄이고, 성취의 기쁨을 주며, 훌륭한 여가 선용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DIY를 섣불리 ‘비용’ 적인 면으로 선택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직접’ 만들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고, 시간이 있고, 능력이 있다면 정말 취향에 맞는 결과가 나올 테지만,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단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면서 짜증만 나고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실 다 직접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은 돈보다 소중할 때가 많다.

이번 시그래프 아시아 2010의 코스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나만의 3D 디스플레이 제작(Build Your Own 3D Display)’은 직접 이런 3D 디스플레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기도 했지만, 해결해야 될 ‘난제’ 들에 대해서도 함께 제시했다. 특히 이 해결해야 될 난제들에 대해서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직접 시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셔터글래스를 직접 만드는 것을 시도한다면, 가장 어려운 과제는 화면과의 동기화다. 초당 60회, 혹은 120회 정도로 바뀌는 전환 타이밍에 안경의 셔터가 정확히 반응하지 못한다면 특정 프레임에 특정 눈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컨셉인 셔터글래스의 의미가 사라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날로그 때야 DDC 핀에 맞출 수 있었지만 DVI와 HDMI 등의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회로도의 구성도 비교적 간단해서, 컨트롤러와 전원 정도만의 구성으로 해결은 된다. 하지만 제대로 기판을 만들기 위한 과정과 디버깅, 전원의 부스터 구성 등은 예전에 최소한 학교에서라도 이런 프로젝트를 해 보지 않았다면 섣불리 시도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아무리 컨트롤러가 간단하다고 해도 직접 동기화 타이밍을 잡고 정확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귀찮은 몇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비용적인 면이 생각보다 싸지 않다는 게 문제다. 예제에서 사용했던 장비들의 비용은 총 120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이 정도면 조금 더 보태면 그냥 상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셔터글래스 방식의 3D 디스플레이 솔루션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제작에 드는 시간과 지원 등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냥 이런 기성 솔루션을 사서 쓰는 게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다.

▲ 사실 이 안경과 함께 필요한 각종 기술적 문제를 생각해 보면 안경은 오히려 싸다.

DIY를 사실 ‘싸게 쓸 수 있다’ 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가격에 차이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 가격과 교환했다는 것이며, 그 가치는 때에 따라 단순히 돈 얼마와 비교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특히 DIY의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과 ‘기술’과 ‘시간’을 당장 지출되는 ‘비용’과 교환하는 형태기 때문이다.

이 노력과 기술과 시간이란 요소는 경우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요소들은 비용이란 요소와 그 가치를 견주었을 때 언제나 교환이 가능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대기업 PC들과 조립 PC들의 가격, 각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가격 문제는 이런 요소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벌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3D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있어, 자신이 시간과 능력과 열정이 있다면 직접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성능의 셔터글래스 안경을 만들어서 쓰면서 여가 선용과 비용 절감,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DIY를 권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쓰고 몇 푼의 돈을 아낄 만큼의 시간과 능력과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몇 푼의 돈과 여유를 맞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DIY란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고, 번거로운 방법일 뿐이다. 오히려 돈으로 다른 일을 할 시간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이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훌륭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