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소 2 - 신국의 땅, 신라 (2011)

'신라'라는 이름은 경주 밖 외지를 사는 사람에게는 역사책 속에 나오는 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교육방송 수능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삼국시대나 고려 초기를 다룬 사극을 봐야 그나마 신라시대 위인 이름이라도 구경하는 게 현실. 최근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히트로 이 때에 대해 친숙함을 가지는 사람들은 과거보다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조선시대 보다는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와는 달리 사료보다는 전설이, 설화보다는 신화가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상상이 투영될 수 있다. 단순히 사료에 글자로 남아 있는 한자, 이두의 음운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시대와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은 역사를 배경으로 나래를 펼치는 이들에게 지극히 매력적인 점이다.

정동극장(http://www.sillamiso.com)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공연장에서 펼치는 '미소 2 - 신국의 땅, 신라(이하 미소2)'는 이러한 측면이 모범적으로 구현된 무용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연에서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신라의 건국신화에서부터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친숙한 선덕여왕과 풍월주 용춘의 사랑 이야기까지, 삶과 이야기가 실제 펼쳐졌던 경주 땅 한복판에서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 천년왕국 신라의 건국을 다룬 1막에서는 장내를 압도하는 군무가 펼쳐진다.

▲ 현세의 '국가'가 된 신국에는 '왕'이 필요. 여기에서 주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소2 이야기는 모두 3막의 구성을 지닌다. 신라의 건국과 시조의 탄생, 신국의 왕을 염원하는 천신제가 다뤄진 1막은 박혁거세와 알영이 주인공으로, 한 나라의 건국을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린다. 이들에 의해 잉태된 '나라'는 더 이상 신화 속의 존재가 아닌 실존으로써 거듭나며 '왕'이라는 절대자가 군림하는 보다 근대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국의 꽃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2막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친숙한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2막은 아직은 여왕이 아닌 덕만공주와 화랑 용춘이 만나 사랑을 키우는 이야기. 전체적인 스토리는 친숙한 드라마와 궤를 같이 하나, 둘 사이의 감정과 배경은 춤사위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표출된다.

3막은 앞서 나온 이야기들의 회귀와 환원을 거치며 '신라'의 국체가 거듭나는 장관을 보여준다. '해동의 빛, 신라로드'라는 막 테마에서 엿볼 수 있듯, 삼국통일과 그 이후의 이야기가 군무를 통해 펼쳐진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서 나온 이야기에 극 토대를 두었기 때문에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명멸해 간 인물들의 이야기가 손끝 발끝으로 표현되며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 덕만공주와 풍월주 용춘이 사랑을 속삭이던 시기가 지나고...

▲ 여왕과 장군이라는 공적인 입장으로 개인의 감정은 잊어야 되는 전란의 시대를 맞이한다.

미소2 공연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특별공연으로 공개된 작품답게, 한국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로 극 처음 개요를 설명해준다. 대사 없이 춤으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무용극 특징 상, 이게 눈으로 보게 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텍스트가 된다. 극 중간에 테마송인 '내 운명 내 사랑이여'가 덕만공주와 화랑 용춘의 애잔한 사랑을 다루긴 하나, 모든 내용이 등장인물의 춤과 연기로 이해되는 편이다.

이처럼 말과 글이 필요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등장 배우들의 춤사위와 표정이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무용극 장르 특성 상, 매 극의 호연 여부는 단에 오른 배우들의 디테일과 집중력에 의해 좌우된다. 이 부분에 관해 미소2 출연진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호연을 펼치며 매 장면마다 조연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존재를 청중의 뇌리에 각인시킨다.

공연 수준만 본다면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밸런스를 갖춘 보기 드문 호연이다. 다만 아마도 미소2 공연을 보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라면 경주에 직접 오는 것 하나 정도? 이 부분에서 관객은 공연 외적인 측면에 신경 써야 되는 부담이 존재한다. 서울, 경인 지역에서 열리는 공연과 달리 관광이나 숙박을 염두에 둔 '여행'의 일환으로 공연을 포지셔닝 시켜야 된다. 이러한 부담이 존재하긴 하나, 공연 자체가 지닌 가치는 명확하다. 경주가 극을 더욱 빛나게 해줄테니까. 낮에 보던 경주 풍경을 한 자리에서 정리해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공연이다.

▲ 어느 시대에나 한 개인의 희노애락은 '태평성대'라는 이름 아래 희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