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도, 또 주위에서도 미국 오가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 출입국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많이 있었다. 대개 입국과정에서 오피서와 인터뷰 좀 해야 되는데, 이게 말이 잘못하면 추방 당하거나 세컨더리로 끌려 가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미국 가기 싫어지는 게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직업이 '농부(Farmer)'라고 하면 대우가 달라진다는 게 통설이다.

한국에서야 친척이나 친구가 시골에서 농사 짓는다고 하면 육체노동의 극한이라 매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나마 벼 농사야 기계가 좋아서 좀 낫다지만, 특수작물로 가거나 임업 쪽이면 괜히 휴가 때 놀러가는 게 미안할 지경인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거야 한국 이야기겠고, 미국이나 유럽 농장주들 사는 거 보면 나름 먹고 사는 걸로 이렇게 콜렉터 라이프의 극한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다. 왜냐면, 기계화가 되어서.

자동차 쪽에 관심이 있다면, 슈퍼카가 몇 억원이네 그러는 거에 놀라고 그러지만 '트랙터'를 보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쪽을 게임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시리즈. 그런데 이거보다 더 독한 세계가 있으니, 그건 농기계 쪽이다. 여기도 뭐든 끌고 다니는 기계들 일이라 '트랙터'라고 하는데, '카'와 달리 운치 있는 일들이 꽤 있어서 하다보면 빠져든다. 또 '콤바인' 등 머신의 세계도 있겠고.

▲ 객관적으로, 오디오필보다 더 대단한 영역이 바로 선진국 농장주. 그걸 관통하는 게임이다.

선진국 농장주 생활을 체험하는 '파밍 시뮬레이터' 시리즈는 국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게임이었지만, 2015년식부터 한글 버전이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알음알음으로 지지세를 넓히는 게임이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공허의 기운 속에서 장부 보며 핸들 돌리는 그런 류의 플레이. 그럼에도 운송 분야와 더불어 1차 산업의 간판인 농림축산업을 다루면서 이 분야 일대종사가 되었다.

게임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작물들 심고 추수하고 시세 보고 팔고 그러는 거다. 가끔 창고에다 재워둔 거 시세 폭등하면 짭짤하게 재미 보고 (바로 농기계 지르고), 시세가 고만고만하거나 애매하면 비싼 작물 뭔가 파악해서 그쪽으로 갈아타는 분주함을 만끽하는 것이 생활이다. 그냥 우리네 사는 거랑 똑같다고나 할까?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게 주인데, 그 대상이 매우 독특할 뿐.

그런데, 연식을 거듭해 오면서 게임 볼륨이 꽤 두툼해진 것이 특징이다. 비타 버전 기준으로는 16년식으로 오면서 PC버전에서 선보여졌던 임업과 축산업이 도입되었고, 마찬가지로 카놀라, 사탕무 등 작물 배리에이션이 확대되었다. 아직까지 인터넷으로 시세표가 연동되는 수준은 아니고 두레나 맺는 정도라지만, 나중에 멀티플레이가 발달되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두려울 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게임이다.

▲ 만약 이 게임이 현실세계의 국제곡물시장과 연동되었다면 여러 사람 잡았을 것이다.

게임 진행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겠다. 시세 좋을 때 팔 꺼리와 장비 할인 행사 할 때 농기계 긁어들일 돈, 이 둘을 만드는 게 그냥 일과의 전부다. 처음에야 그냥 곡물로 시작하겠지만, 가면 갈수록 마진 좋은 작물을 생산하려면 농기계도 그에 맞춰서 풀 셋팅해야 되어서 이래저래 분주하다. 아직 농기계 마개조 같은 특수 스킬은 없어서, 다들 유명 브랜드 명품 농기계로 콜렉터해야 되는 탓에 좀 바빠진다.

그런데 이 농기계들이 환상적이다. 제로백 자체가 불가능한 우직한 기계들이지만, 토크나 기통에 홀려 있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머신들이 가득하다. 50여 종의 실제 농기계들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데, 한국에서도 트럭으로 볼 수 있는 벤더들도 있고 슈퍼카 벤더도 있고 그렇다. 특이한 점은, 이들 농기계 하나하나가 다들 쓸데 있는 물건들이라 그냥 다 모아야 된다는 점이다. 그 여정이 참 길고 험하다.

단조로우나 편안한 BGM이나 들으며 밭이나 밀고 갈고 하다 보면, 시간이 참 잘도 흘러간다. 이게 포터블용이라서 더 그런지, 농사 일 자체와 시세표 등을 통한 수치 쪽 편집광 성향 자극이 상당해서 잠자리 같은데에서 잡고 있다보면 김 매러 나갈 시간 되곤 그런다. 특별히 비타 역량을 쥐어짜고 그러는 게임은 아니라지만, 대신 사람을 쥐어짜는 게임이다. 단순함처럼 무서운 재미가 또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다.

▲ 사바세계에서 '진짜' 먹고사는 것과 맞물리는 엄청난 콜렉터 게임.

전체이용가 / 평점 : 9점 (1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