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생긴 거 보고서, '일본 게임이다' 또는 '미국 게임이다' 구분 짓는 선입견 같은 것이 여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칼같이 자르는 그런 개념은 이제 아니다. 미국에서 일본식이 심심찮게 나오고, 일본에서 미국식이 심심찮게 나오다보니 이제는 게임 잘만든 거 하나만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소위 '일본에서 만들었으니까'라는 선입견을 깬 작품으로는 지난 2009년에 발매된 '데몬즈 소울'이 있겠다. 이는 3인칭 시점 액션물 TSP 작법을 따르면서도, 마치 과거 '위저드리'나 '주시자의 눈' 같은 게임 시스템에 딥다크한 세계관까지 녹여내서 미국보다는 유럽 어디에선가 나온 작품 대접까지 받았던 수작이었다.

'데몬즈 소울'에 이어 나온 다크 소울 시리즈는 프롬소프트웨어社의 대표성까지 뒤바꿀 정도로 글로벌한 히트를 기록했다. 이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데몬즈 소울'이 있었어도 여전히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만든 회사 정도로 인식이 박혀 있었다. 오토기도 그렇고, 아머드 코어도 대략 망가나 애니메 경계선 정도로 여겨졌던 탓에 이미지가 묶여 있었는데, 다크 소울 시리즈의 빅히트로 회사 인식이 또 확 달라졌다.

▲ 신의 시대와 인간의 시대, 그 경계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자의 숙명을 그린다.

4월 초에 국내에 한국어 버전이 정식 발매된 다크 소울 시리즈의 최신작 '다크 소울 3'는 요즘 블록버스터가 그러하듯이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다크 소울 시리즈가 패러랠 월드 포지션인 '데몬즈 소울'과 그의 후속작 '블러드본'과 같은 형제들과의 교감으로 성장해 온 덕분에, 하나의 흐름을 지닌 이야기가 맺음의 모양새를 취하곤 있다.

하지만. 워낙 어려워서 그런 건 잘 의식되지 않는다. 되려, 이번 3편으로 오면서 어떻게 하면 더 프리하게 잘 죽나 알아보는 그런 기회가 더욱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다. 가뜩이나 전작들부터 다양한 상황과 모션으로 죽어나가는 와중에, 캐릭터 설정마다 새로운 기분까지 들게 만들어서 더 죽기 좋아진 그런 게임이 되겠다. 물론, 이렇게 죽다보면 죽은 순간의 세계선이 보이기 마련이니 그거 따라가는 게 재미라면 재미.

게임시스템 측면에서 본다면, 무기별 고유기 형태로 '웨폰아츠(Weapon Arts)'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사실 전작에서 전투가 상당히 완숙되어 있던 걸 감안한다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리얼리티 측면에서 전투의 재미가 확장된 거 정도로 볼 수 있겠다. 특히 이게 플레이어는 물론 적들까지 비슷한 처지가 되어놔서, 가면 갈수록 숨 가쁜 게임 난이도를 더 가파른 험지로 만들어 간다.

▲ (당연하게도) 시리즈 최고의 레벨 디자인과 밸런스를 자랑한다.

TPS 장르가 그리 취향이 아니라면, 튜토리얼 파트 지나고 첫 번째 보스에서부터 다소 막막하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특별히 AI가 알파고 같은 학습형이 아닌 스크립트 성이라서 죽다보면 길이 보이는 형편. 이런 부분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긴 숨으로 게임을 즐기다보면 한 타이틀로 꽤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이 크게 든다. 이 부분은 전작들과 비슷한 부분.

이처럼 부대끼는 모험에서, 가장 신기해 보이는 부분은 빼어난 그래픽이라고 하겠다. 몬스터들이야 자다 꿈에 나올까 겁날 비주얼들이긴 하지만, 딥다크한 레벨 디자인과 분위기는 PS4 게임 중에서도 역대급이다. 좀 지나고 나서 익숙한 곳을 다시 해보게 될 때가 되면, 마치 운전 익숙해지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그런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 와중에 들리는 소리들도 어쩌면 그리 귀에 쏙쏙 꽂히나 싶을 정도고.

제작사가 마음이 바뀌면 4편도, 외전도 나올 수도 있고 그렇겠다. 마치 톨킨 소설처럼 무언가 있어 보이는 설정들이 다 해결된 것이 아니라서, 만약 프롬 소프트웨어社에서 세계관 확장이나 승계로 간다면 이처럼 멋진 신세계를 게임 속에서 또 만나는 건 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TPS 장르로서의 완전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시리즈 전체가 자연스럽게 게이머 본연의 실력을 늘려주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보인다.

▲ 사람이 아닌 것들이 한 가득. '일섬'하는 재미가 아니라 '사투'를 펼치는 그런 류의 재미다.

청소년이용불가 / 평점 : 9점(1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