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몸은 어느덧 내연기관으로 변모한다.
한껏 들이마신 숨은 연료처럼 저장되고 총성이 울리면 온몸에 채워졌던 산소는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남자 육상 100m. 찰나에 끝나는 몰입과 집중의 경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가리는 이 경기를 스포츠의 ‘꽃 중의 꽃’으로 부르는 데 이견의 꼬리표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장 원초적인 육상에서도 가장 뛰어난 피지컬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 종목에서 한국은 오랫동안 두 손을 놓고 관망만 했다.
세계 수준과 격차가 너무나 큰 탓에 도무지 용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좌절과 절망만 안겨줬던 이 종목에 마침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지컬의 한계”라고 입맛만 다셨던 우리에게 그렇게 높아만 보였던 10초 벽이 조만간 허물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지형의 변화는 현장 전문가들의 동물적인 감각에서 감지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육상의 꿈틀대는 조짐은 예사롭지 않다.
인기의 사각지대에 내몰렸던 육상이 유튜브를 통한 지속적인 노출과 그에 따른 애정과 관심의 증가 덕분인지 기류가 달라졌다.
선수들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열정이 뜨겁다.
관심이 생기니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고 먼길을 함께 가야하는 동반자들의 선의의 경쟁은 결국 기록단축의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남자육상 100m 김국영의 독주체제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지난 2010년 10초31을 기록해 서말구의 한국 기록(10초34)을 31년 만에 갈아 치우며 10년 넘게 고독한 기록싸움에 진이 빠졌던 그는 최근 후배들의 거센 추격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로서도 기분좋은(?) 환경 변화다.
10초17까지 치고 올라온 후배 김태효(29·파주시청)에다 ‘젊은 피’ 이준혁(21·한체대 10초18)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못해 무섭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하향평준화에 길들여졌던 선수들이 관심이라는 황홀한 ‘묘약’을 맛본 뒤 많이 달라졌다.
저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스파이크 끈을 단단히 고쳐맨 모습이 역력하고 기록의 단축세 역시 눈에 띌 정도다.
대한육상연맹 김돈순 사무처장도 최근 육상의 흐름을 의미깊게 내다봤다.
그는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의 육상입문이 늘고 있는 추세”라면서 “유망주들의 입문과 이들의 치열한 경쟁이 한국 육상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처장의 분석처럼 최근 육상 단거리에서 ‘될성부른 떡잎’들의 가세는 한국 육상의 숙원인 100m에서 10초 벽 돌파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부산토성초 이건호(11초93),대구 월배중 김동진(10초76), 논산중 김영한(10초98), 유신고 이진서(10초59) 등이 바로 그들이다.
뚜렷한 목표의식에다 주눅들지 않는 MZ세대의 특징을 맘껏 발산하는 이들은 한국 육상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선두 주자로 부족함이 없다.
관심이 경쟁이라는 선물로 다가왔다면 변화의 또다른 동력은 당근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유한 어린 아이들이 스포츠에 입문하면 십중팔구 야구, 축구 등 프로 구기종목의 문을 두드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긴 듯 육상 입문이 잦아졌다.
육상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고 이들이 중간에 타종목으로 이탈하지 않고 육상 선수로서 지속가능한 꿈을 불태우고 있다는 게 주목할 대목이다.
선수들에게 뚜렷한 목표의식과 선진적인 훈련시스템을 제공해야 하는 대한육상연맹(회장 임대기)의 부단한 노력이 이러한 긍정적 변화의 원동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회장사인 삼성전자는 재능있는 꿈나무 발굴과 해외전훈 기획 등 병참기지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자 육상 100m 10초 벽 돌파에 무려 2억원의 특별 포상금을 내걸어 선수들의 경쟁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중국의 쑤빙텐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9초83으로 아시아신기록을 세웠다.
쑤빙텐의 기록은 신체 조건이 변명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을 쑥스럽게 만들었다.
쑤빙텐의 피지컬은 신장 173㎝, 체중 66㎏에 불과하며 나이도 33세로 그렇게 젊지 않다.
스포츠에서 더이상 한계는 없다.
그것은 핑계요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 육상의 숙원과제인 100m 10초 벽 돌파. 관심과 경쟁, 그리고 당근이라는 세 발의 실탄이 장착된 권총이 과녁을 정조준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과녁이 점점 커 보인다.
10초 벽은 조만간 깨지게 돼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은 목표달성의 끝이 아니라 한국 육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또 다른 출발선이다.
jhkoh@sportsseoul.com
| <해당뉴스는 뽐뿌시스템이 해당게시판에 맞다고 판단하여 복사등록 하였습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스포츠서울(www.sportsseoul.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
|
등록안내
등록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