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리고 티쏘의 트레디션 오픈하트9

2. 시계에 관심이 없다가 스와치의 시스템 51을 구입한 계기로, 오토매틱 시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백화점에 구경도 가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그랬지요. 

3. 마침 몽골에 학술대회가 있어서 티쏘의 트레디션 오픈하트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백화점 정가가 85만원 정도 하는 것 같던데, 면세점에서 40만원 대 후반으로 구입할 수 있었지요. 여자친구가 결제를 해주길래 후에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합니다. 생일 선물이라고. 저는 MX Master 2S가 생일선물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고마웠지요. 

4. 사실 트레디션 오픈하트는 여자친구가 골라줬습니다. 저는 르로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즈골드, 백판, 가죽 밴드의 오픈하트가 정말로 예뻐보였습니다. 

5. 티쏘를 구입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눈이 띠는 것이 티쏘는 '20대' 에서 '30대'가 주로 차는 브랜드라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여자친구와 고민해봤습니다. 이 디자인이 정말 저 같은 '중년'에게 안 어울리는 것일까.

6. 그렇게 보면 시스템 51도 학기 중 수업시간에 잘 차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제 자신이 자꾸 위축되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이라는 용어에 일종의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7. 중년이 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제한적입니다만, 그 제한은 사실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이번 기회에 해보았습니다. 본인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브랜드의 인지도나, 그 브랜드가 갖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특정한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8. 제 나이쯤 되면 보통 최소 해밀턴에서, 보통 태그호이어 정도 차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 제 욕심은 티쏘정도 까지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사실 면세가였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제겐 큰 사치겠지요. 제 주변에 교수님들도 좋은 시계를 차고 다니시는 분들은 극히 드뭅니다. 사실 저는 본 적이 없어요. 

9. 트레디션 오픈하트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시계 같습니다. 튀지 않고, 옷에 따라 점잖아 보이던가, 또는 캐주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무난해 보이면서도, 조금 특별해 보이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시간이 정말 잘 맞더라구요. 시스템 51은 오차가 정말 많이 나서 아예 1분 정도 빠르게 시간을 맞춰 놓았는데, 오픈하트는 처음에 몇 초 정도 차이가 나고 이후에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정밀하게 재 본 것은 아니구요. 날짜창이 없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미관상으로는 깔끔한 것이 더 좋았습니다.

10.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제가 힘들 때 여자친구가 선물로 준 시계라는 것입니다. 저랑 같은 일을 하면서, 함께 어려워하고, 버텨가는 처지에 이런 선물을 해준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늘 아끼고, 절약하는 친구인데 말입니다. 잘 관리해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계였으면 좋겠습니다. 마흔 이라는 나이를 지나, 마흔 셋이 된 이 시점에 중년이 겪는 갱년기(?) 같은 것에 무척 힘들었습니다만, 어쨌든 좋은 시계(물론 제 기준입니다)가 생겼으니, 우울해 할 시간에 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11.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시스템 51도 그렇고 오토매틱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는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화가 나거나, 짜증 날 때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으면 조금 안정이 되더라구요. 중년이 되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나 봅니다. 앞으로는 시계를 살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힘든 순간에 선물받은 의미있는 시계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인 시계이기도 하구요. 

12. 일요일입니다. 시계포럼 여러분들 모두가 좋은 일요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신나서 쓴 별 의미없는(그리고 오그라드는) 글이었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